색채와 정경, 계절, 그리고 인물. 자신의 눈에 비친 세계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가 하이쿠처럼 흘러간다.

풀베개 草枕 (1906)
지은이 : 나쓰메 소세키
옮긴이 : 송태욱
현암사 (2013)

보고 있으니 빨간 것이 물 위로 뚝 떨어졌다. 고요한 봄에 움직인 것은 그저 이 한 송이뿐이다. 잠시 후 다시 뚝 떨어졌다. 저 꽃은 결코 지지 않는다. 무너진다기보다는 단단히 뭉친 채 가지를 떠난다. 가지를 떠날 때는 한 번에 떠나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져도 뭉쳐 있는 것은 어쩐지 독살스럽다. 또 뚝 떨어진다. 저렇게 떨어지는 동안 연못의 물이 붉어지리라 생각했다. 꽃이 조용히 떠 있는 근처는 지금도 약간 붉은 듯하다. 또 떨어졌다. 땅 위에 떨어진 건지, 물 위에 떨어진 건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조용히 뜬다. 또 떨어진다. 저것이 가라앉는 일이 있을까, 하고 생각한다. 해마다 남김없이 떨어지는 수만 송이의 동백꽃은 물에 잠깐 잠겨 빛깔이 풀리기 시작하고 썩어 진흙이 되고, 이윽고 밑바닥에 가라앉는 것일까. 수천 년 후에는 이 오래된 연못이,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떨어진 동백꽃으로 메워져 원래의 평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. 또 하나의 커다란 꽃이 피를 칠한 도깨비불처럼 떨어진다. 또 떨어진다. 뚝뚝 떨어진다. 한없이 떨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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